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즈텍 제국 (문단 편집) == 경제 == 지역마다 다른 통화가 사용되었다. 물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 화폐 단위는 [[카카오]]이다. * [[토끼]]: 카카오 30개 * [[칠면조]] 알: 카카오 3개 * 암컷 [[칠면조]]: 카카오 100개 * 수컷 [[칠면조]]: 카카오 300개 위조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행한 아즈텍에서도 밀랍이나 점토, 야생 카카오 아종 등으로 위조화폐를 만드는 생계형 위조범들이 있을 정도로 '''카카오 콩'''은 상당히 귀중한 소액 화폐였다. 모든 카카오 콩들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고, 종과 출처가 된 지역에 따라 크고 작은 가치의 편차가 있었다. 고액 화폐의 경우에는 후에 서술되는 콰치틀리 면포나 금속으로 된 도끼날 등이 있었으나, [[누에바에스파냐]] 시대로 접어들며 에스파냐의 화폐들이 유입되어 몰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카카오 콩은 누에바에스파냐 시대에도 살아남았고,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부 지역에서 화폐로서의 기능을 했다. 누에바에스파냐 시대가 되면 에스파냐의 레알 및 페소들과 병행했는데 이를 통해서 명확한 가치 편차를 알 수 있다. 레알은 200개의 카카오 콩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8레알은 1페소의 가격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고액 화폐인 '''콰치틀리(quachtli) 면포''' 역시 품질에 따라서 각기 다른 가치를 가졌으며, 작게는 카카오 콩 65개부터 크게는 240 ~ 300개까지 다양한 가치의 편차를 가졌다.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일반인들은 1년에 20개의 면직물을 소비할 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했듯, 에스파냐의 화폐들이 유입되면서 결국 쇠퇴하게 된다. 아즈텍인 사회의 중심은 여느 문명들과는 크게 다르지 않게, 시장이 중심이 되었다. 특히 도시국가들을 포함한 대제국으로 성장한 아즈텍이 무역 체계를 독점한 이후, 도시국가들에서 나오는 수많은 공물과 상품들이 아즈텍의 시장을 오고 갔다. 장날이 되면 60,000명이 올 수준이었던 테노치티틀란의 틀라텔롤코 중앙 시장은 에스파냐인들도 놀랄 수준으로 거대했으며, 이러한 시장의 존재를 본 한 스페인의 [[신부(종교)|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에 가는 것과 천당에 가는 것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대개의 아즈텍 부인들은 천당을 고른다. 그러나 먼저 천당에서 시장에 갈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강을 통해서 물자가 오가고 상인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했으며, 아즈텍의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5일장이 섰다. 그만큼 귀족들과 왕족의 소비력이 막강했으며, 새의 깃털과 재규어의 가죽, 카카오와 황금, 해안지역에서 가져온 굴, 거북, 가재 등 온갖 물자들이 몰려들었으며 밀수 역시 이루어졌다.[[https://blog.naver.com/ohs6888/221711335986|#]] 아즈텍에 [[바퀴(도구)|바퀴]]가 있었는지 여부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지만, 대체로 바퀴가 물류 수송에 커다란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수도 테노치티틀란부터가 운하도시였고, 물류에서 [[카누]]가 차지하는 부분은 현대의 자동차 그 이상이었다. 아즈텍에서는 상인의 [[카누]]를 부수는 것은 전쟁을 의미하는 행위였다. 더군다나 [[수레]]를 만들어도 이를 끌만한 마땅한 원동력, 즉 [[소]], [[말]]같은 종의 대형 우제류들이 없었던 메소아메리카에선 바퀴가 쓰이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실제로 이 지역의 바퀴 유물도 [[완구]]같은 형태로만 발견되고 있다. 다만 수도가 내륙에 있었던 아즈텍에 도로망이 미비했던 건 페널티였는데, 이것 때문에 전성기의 영토도 [[잉카 제국]]의 1/10을 겨우 넘겼고, 아즈텍의 멸망 당시 잉카와는 다르게 [[피난]]이나 [[임시수도]] 같은 시도도 못해보고 그대로 멸망했다. 도구의 대부분이 나무나 돌이었고, 철을 다루지 못했던 탓에 나무를 베는게 어려워서 숲을 밀어버리고 개간을 하는 건 어려웠다. 다만 농업 자체는 번성했다. 아즈텍은 주로 채식 위주로 식사를 했으며, [[육류]]도 먹었는데 여러 양서류, 파충류 동물들과 곤충류들을 별미로 먹었다. 주요 [[가축]]으로 [[개]], [[칠면조]], [[오리]] 등이었다고 추정되고는 있으나, 이 부분은 불확실하다. 칠면조 뼈같이 확실하게 증거가 남아있는 [[마야 문명]]을 통해서 추정만 할 뿐이다.[* 사실 가축 사육설은 [[인신공양]]을 옹호하기 위한 가설중 하나이지만, [[테노치티틀란]]이 가축을 기를 정도로 넓은 지역도 아니고 마야가 위치한 [[유카탄 반도]]와 직선거리로도 1,000km가 넘기 때문에 마야의 가축이 제대로 전파 되었는지도 불확실하다.] 또한 주요 작물로는 [[콩]]이나 [[땅콩]] 등의 견과류, [[용설란]], [[옥수수]], [[토마토]], [[아마란스(식물)|아마란스]] 등이 있었다.[[https://www.worldhistory.org/article/723/aztec-food--agriculture/|#]] [[밀]], [[쌀]]같은 노동집약적 문명의 안정성에 주요 역할을 하는 [[곡식]]들이 없었던 메소아메리카 지방에서 지력을 굉장한 수준으로 소비하고, 보관도 어려운 옥수수같은 주요 작물들의 한계와 지력을 회복시켜줄 대형 가축의 부재는 아즈텍의 발전에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이는 곧 자연스럽게 식량이 인구 수를 제한시키는 [[맬서스 트랩]]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러한 한계는 [[잉카]] 같은 타 아메리카 계열 문명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자]] 같은 다른 작물들은 [[안데스 산맥]]을 넘지도 못했고, 설사 넘어서 아즈텍에 와 재배되었다고 해도 결국 한계는 확실했기 때문에 곡식의 부재를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